가장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흑화
커버에는 아스팔트에 누워있는 여자가 보입니다. 익숙한 얼굴, <쇼미더머니 9>으로 상당한 하입을 받은 래퍼 미란이입니다. 하지만 너무 달라보입니다. 검고 진한 아이라인과 머리, 더불어 우리가 이전에 미란이한테서 봤던 의상도 아닙니다. 흑화한 것처럼 보이는 외관은 강렬하고 도발적인 인상을 줍니다. 심지어 누워있는 자세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위를 향해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젠 음악으로 위만 바라보는 래퍼의 앨범, 미란이의 <The Drift>입니다.
미란이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쇼미더머니 9>에 출연하면서 입니다. 팀 음원 미션에서 'VVS'를 통해 이전 라운드보다 더욱 발전해가는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과도하게 목을 조이는 듯한 소리에서 음정을 낮추고 편하게 싱잉 랩으로 바꾼 것이 큰 몫을 해냈습니다. 이렇게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고 자신에게 적합한 스타일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미란이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던 시절에서 <쇼미더머니> 본선에 진출한 최초의 여성래퍼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으니까요. 미란이는 아마 이 순간에 느꼈을 겁니다. 음악 스타일의 변화가 아티스트에게 주는 생명력을 말이죠. 그러한 경험 덕에 이러한 <The Drift>의 컨셉을 떠올릴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앨범을 한바퀴 돌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티스트가 속한 집단의 중요성이었습니다. 현재 미란이가 소속되어 있는 앳애어리어는 그루비룸이 설립한 레이블인데, 아티스트를 위한 색깔을 잘 찾아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그루비룸의 휘민은 기존 그루비룸의 색과 다른 <AAA>라는 앨범을 자신의 또다른 자아 릴 모쉬핏으로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트랜디한 앨범이었는데, 그러한 트랜디한 음악을 자신 뿐만 아니라 소속 아티스트에게도 영감을 주는 것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란이는 <AAA>에서 트랜디한 비트위에서 엄청난 피처링 벌스를 보여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휘민의 디랙팅이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점 또한 <The Drift>에서 드러났습니다.
트랙간의 짜임새도 상당히 정교했습니다. 앨범을 시작하는 'Intro'와 중간에 스킷 역할을 하는 'Interlude'의 존재는 앨범의 컨셉을 보여주고 중간에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해줘 편하게 앨범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AAA>에서 봤던 래핑이 드러나는 앨범 전반부와 'Interlude'를 기점으로 기존의 장점인 싱잉이 드러나는 구성은 마치 CD 두 개로 된 앨범처럼 풍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WOW'라는 트랙에선 피처링 없이 분위기를 휘어잡아 이끌어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Interlude' 의 존재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타이틀인 'Candy (Feat. Leellamarz, Coogie)'는 기존의 장점인 싱잉이 드러나는 앨범 후반부를 시작하는 트랙입니다. 'Interlude'에서 자신의 첫 싱글이었던 'Daisy (Feat. pH-1)'의 일부를 삽입해 앨범의 전반부는 자신의 변화는 새로운 무기의 장착일 뿐, 기존의 장점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듯 했습니다 (물론 뒷 트랙과의 유기성 또한 좋았습니다). 또한 이런 감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후반부 트랙이 설득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험해'는 상당히 팝의 색채가 강한 비트에서 미란이의 장점이 잘 드러난 트랙이라고 생각합니다. 앨범의 이름처럼 첫 트랙에서 음악 스타일의 엄청난 드리프트를 보여줬다면, 'Interlude'를 통해 기존 스타일에 트랜디함을 섞어 다시 한 번 드리프트를 보여준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앨범의 완성도가 정말 엄청났지만 아쉬운 점 또한 존재합니다. 기존 미란이의 장점과 새롭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싱글 모음집 같다는 느낌을 버릴 수 앖었습니다. 특히 전반부는 신선함으로 서사의 빈약함을 잡아냈다고 생각하는데, 후반부는 오히려 길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렇기에 정규 앨범이라고 하기엔 EP 2개를 붙인 앨범같다고 생각했습니다.
'VVS'에서 미란이의 가사는 밑바닥 소녀가 이제 빛을 볼 것이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의 가사, 그리고 한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처럼 밑바닥 소녀 미란이는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힙합이 누구보다 잘맞는 흑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지금까지 미란이의 <The Drift>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