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아이돌의 시초
Seotaiji and Boys IV
서태지와 아이들 4집으로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양현석은 서태지로 언플하며 킵식스 같은 그룹을 내어 초반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후에 YG Family로 재기에 성공하며 현재 4대 기획사의 대표(였던 것)이 되었고 이주노는 영턱스클럽, 라디오 DJ 활동 등 초반엔 양현석보다 더 뛰어난 제작자의 모습을 보였으나, 영턱스클럽의 부진, 본인의 앨범의 큰 실패, 그리고 다양한 논란 등으로 결국 결론적으로 둘 다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서태지는 넬 같은 인기있는 밴드를 채택하기도 하고, 필자가 좋아하는 서태지 7집 같이 계속 솔로 앨범을 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들의 끝 만을 논할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우선 당연지사로 언급해야하는 곡인 Come Back Home을 보자. 당시 해외에서 유행하던 갱스터 랩의 스타일을 따와서 만든 곡으로 가출청소년의 입장으로 쓴 공감해주는 가사와 이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실제로 이곡을 듣고 집으로 귀가한 가출청소년이 많이 늘자 이로 인해 당시 큰 이슈가 되었다. 자고로 갱스터 랩은 가사 또한 진짜 갱스터 같은 느낌이 나야 하지만, 이들은 그저 그 랩의 스타일을 따온 것이다. 그리고 훗날 한국 가요계에는 갱스터 랩이 유행했다.
그리고 다른 의의가 있는 곡은 시대유감이다. 그래도 이 앨범은 180만장이 팔렸으니 혹시 집에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초판이 있다면 이 트랙을 들어보자. 그러면 가사가 나와야 할 부분에 가사는 안나오고 계속 MR만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는 그들이 검게 물든 입술이라는 가사로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자 그들은 시대유감에 수록된 가사를 전부 없애버리는 식으로 항의를 했다. 당시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가 헌법을 위반한다고 하여 결국은 노래에 심의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위헌 판결을 받을 때가지 모든 것을 주도한 사람은 정태춘이고 서태지는 압도적인 인기와 영향력으로 그 때 심의에 대한 여론을 바꾸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암튼 이러한 사건으로 결국 공윤은 사라지고 패닉 같이 파격적인 가사가 발매될 수 있게 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소리지르듯이 부르는 창법이 인상적인 필승,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교실 이데아 백마스킹 괴담(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면 씨(피)가 모자라라고 들린다는 괴담)에 대한 대답으로 제작된 이너비리스너비, 본래는 기성세대의 무책임합 등을 신랄하게 비판한 시대유감 등 인상적인 트랙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3집에서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의 타이틀로 얻어낸 문화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이 앨범으로 지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국내에서 힙합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친 거의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고 국내 가요계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친 앨범이 되었다. 애초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그 어떤 아이돌도 감히 따라갈 수 없을만큼 거대했고 현재같이 아이돌이 지천의 널려있는 현재에는 당시의 느낌을 알 수가 없다. 당시, 즉 1992년부터 1995년 정도까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인기를 독차지하던 시기이기에 그 시절을 살았던 시절이라면 누구나 뇌리에 박혀있을 것이다. 서태지는 이후로도 5집으로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6집의 울트라맨이야를 히트시켜 다시 인기몰이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