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남자의 주인공 선언
정장을 입은 한 남자의 흑백사진이 보입니다. 남자의 사진 주변을 보면 이미지들이 더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마치 어떤 시상식의 수상 후보 내지 수상자를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수상 부분은 '올해의 시트콤'입니다. 가볍고 웃음이 주된 장르인 시트콤의 배우 치곤 남자의 얼굴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치고 회한이 담겨 있는 듯한 얼굴입니다. 시트콤같은 인생에 상을 주는 듯한 앨범, 키츠요지의 <Sitcom Of The Year>입니다.
키츠요지라는 래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은 '돈미새', 말 그대로 그의 노래의 가장 주된 소재는 돈입니다. 이번 앨범 뿐만 아니라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좋은 평을 받은 앨범 <돈이 다가 아니라는 새끼들은 전부 사기꾼이야>(줄여서 <돈다새>)는 앨범 제목에서 드러나듯 돈에 한이 서린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키츠요지는 그러한 돈에 대한 한을 매우 익살스럽고 상당히 과격하게 풀어내는 것에 큰 강점이 있는 래퍼입니다. 실로 겪으면 매우 서럽고 화나는 상황이지만 이를 웃기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심지어 서사를 가사로 풀어내는 능력까지 출중하니, 어떻게 보면 훌륭한 시트콤 작가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Sitcom Of The Year>은 트랙 별로 겹치는 듯한 이야기를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서술하여 지루함을 줄였고, 그 과정에서 키츠요지만의 독특한 비유와 표현법이 오히려 부각되어 정규 앨범 급의 퀄리티라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은 키츠요지의 돈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쇼미더머니9>에 참여했던 경험입니다. 첫 트랙인 '주인공'에 방송을 타며 느낀 감정이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런 경험 속에서 키츠요지가 느낀 허무함에 마치 자신의 인생이 하나의 시트콤이라고 생각해 앨범을 이렇게 디자인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트 또한 상당히 유기적이고 iCos(프레디 카소)가 총괄한 높은 퀄리티의 프로덕션도 인상적입니다.
모든 곡을 관통하는 공통된 스탠스는 대상들에 대한 비꼼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키츠요지가 가사를 쓰는 방식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역경들을 독창적이규 거친 언어를 활용한 반어법으로 가사를 작성하여 비꼬는 듯한 화법으로 서사가 진행됩니다. 이러한 비꼼에서 해학이 발생하고 키츠요지만의 비극을 바라보는, 악에 받쳐 웃기고 신랄하게 조롱하는 시각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키츠요지 특유의 정서가 트랙마다 드러나다가, 그 설움들이 모여 마지막 트랙인 '다큐멘터리'에서 폭발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앨범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유기성과 키츠요지의 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너무 비슷한 느낌의 트랙들로 인해 피곤하다는 인상과 오토튠을 입힌 키츠요지의 톤이 호불호의 요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비음이 조금 섞여있고 목소리를 긁어내는 키츠요지 특유의 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호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토튠이 강하게 들어간 부분에서는 어떤 가사를 뱉고 있는지 불명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어 서사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장 이 앨범에서 많이 들은 트랙은 'NG 모음' 입니다. 앨범 대부분의 곡이 현재 상황에 분노와 악에 찬 것과 차별되게, 'NG 모음'은 여태 키츠요지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며 앞으로의 포부 또한 옅볼 수 있어 희망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좋았던 트랙으로 '새벽 네 시'가 있는데, 이전부터 꿈꾸던 래퍼라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알바를 전전했던 이전처럼 새벽에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는 차 안의 광경을 선명하게 그려내 인상깊은 트랙이었습니다. 또한 '극대노' 라는 트랙은 그가 돈에 집착이 생기는 해프닝의 나열을 분노의 단계로 빗대어 표현한, 손이 많이 가는 트랙이었습니다.
키츠요지는 늘 과소평가 받았습니다. 음악을 잘한다는 평가가 늘 있었지만, 이러한 평가를 실감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키츠요지는 다른 이들이 뭐라하던 자기 자신의 시트콤같은 인생이 올해 최고의 인생이라고 스스로에게 상을 줬습니다. 이는 자신이 앞으로 얻을 수많은 트로피들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말이죠. 그는 여전히 많은 작업량을 보여주며 주인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앨범을 듣던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 키츠요지의 <Sitcom Of The Year>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