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보일 때 까지의 치열한 분투
어둠이 깔린 숲, 그 사이에 허연 보자기를 쓴 사람 같은 형채가 달빛같은 것을 받고 서 있습니다. 사람같아 보이지만 그 존재가 사람인지, 아니면 숲에 사는 우리가 모르는 동물인지 확실치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튼 그 존재가 무엇이든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사람도 동물의 한 종류니까요. 이런 앨범 커버에서 볼 수 있는 듯, 스스로를 다양한 동물로 바라본 듯한 앨범, 언텔의 <ANIMAL>입니다.
언텔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조용히 치고 나오는 래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리뷰할 앨범인 <ANIMAL>의 전작인 <HUMAN, the album>에서 부터 매체에서 보여준 스타일과 많이 (좋은 방향으로) 바뀐 사운드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전작과 또 다른, 멜로디컬한 면모와 트렌디한 사운드로 돌아온 언텔의 <ANIMAL>은 2023년의 막바지를 빛내야 했던 앨범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용히 치고 나온다고 앞서 말했듯이 뭔가 퀄리티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모든 트랙을 듣고 나서 든 생각은 정말 새롭고 트랜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앨범 이전에 낸 작업물과 색채가 다른 소리들로 앨범을 구성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현 시대 가장 트랜디한 요소들을 음악에 잘 차용했습니다. 물론 요즘 그런 요소들이 많은 앨범에 들어가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로 차별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텔은 이를 훌륭히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상을 하며, 언텔이 뭔가 외롭게 자신의 문제를 맞서 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앨범에 에코 효과가 자주 들어가서 그런 듯 한데, 이러한 점들이 더욱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만들어 깊게 서사에 들어간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무의식을 나타낼 땐 목소리에 에코와 같은 변형을 주고, 자신의 주변을 나타낼 때는 에코 효과를 끄는 것처럼 들렸는데, 그래서 노래에 깊게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던 거 같습니다. 특히나 '김자각몽'에서 그러한 면모가 잘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장치들을 활용해 정말 치열하게 자신을 파고든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면모가 '낙타거울'에 모두 쌓이는 듯한 모양새였습니다.
앨범의 아쉬운 점이라면 추상적인 개념을 많이 사용한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운드와 제목만 연결 지어도 충분히 어떤 의도를 갖고 트랙을 제작했는지 알 수 있고, 언텔 본인도 가사보단 사운드에 집중해 달라 말했지만, 나름 본인의 또다른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서사를 풀어가는 모습이 덜 부각된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앨범 덕에 언텔이라는 아티스트가 앞으로 낼 작업물에 대해 큰 기대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트랙은 '열등동물', '이사철새', 그리고 앞서 말한 '낙타거울'입니다. 우선, 이 앨범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트랙이 '열등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돼지를 연상시키는 열등한 동물로 자신을 드러내며 이 앨범이 자신의 혐오를 이야기 할 것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훅메이킹 능력도 잘 드러나 유달리 귀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사운드 측면에서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트랙은 '이사철새'였습니다. 언텔의 목소리와 트랜디한 사운드가 정말 잘 어우러져서 첫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서사적으로 깊게 빠져든 트랙은 '낙타거울'입니다. 폭발 직전의 감정을 너무 빌드업을 잘 해서 가사를 보며 정말 좋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여행사자'와의 연개가 너무 좋아서 인상깊었습니다.
앨범 커버 속 존재가 무엇인지는 앞서 말한 것 처럼 하얗고 불명확합니다. 그렇다는 건 다른 의미로 가변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죠. 이번 앨범에선 그런 여덟 가지의 모습이 여덟 트랙으로 표현됐다고 생각합니다. 트랙 제목들도 직관적인 개념 하나와 추상적인 개념 하나의 조합을 네 글자로 나타낸 듯 합니다. 그렇기에 듣는이는 트랙의 내용은 짐작하되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지 기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네 글자의 제목을 읽고 난 뒤에 더 깊게 감상을 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ANIMAL>은 자신을 짐승에서 사람으로 인식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어떤 동물의 모습인지는 거울 속을 보면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거울 속 짐승을 치열하게 응시하다 보면 "나"라는 HUMAN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언텔의 앨범 <ANIMAL>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