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를 이끌 래퍼, 이트
필자는 레이지(Rage) 장르를 정말로 싫어한다. 아니, 레이지는 끔찍한 장르이다. <Whole Lotta Red>를 시작으로 <A Great Chaos>, <If Looks Could Kill>등의 비슷하다 못해 똑같은 트랙들을 40분에서 무려 1시간이 넘어가는 분량으로 때려 넣는 레이지 앨범들은 그저 귀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이트(Yeat)는 무언가 많이 다르다. <2093>또한 1시간이 넘어가는 분량을 가졌고, 레이지 장르의 앨범이지만, 그저 훌륭하다는 표현만으로 국한되기엔 실례일 정도의 앨범이다. 단연코 올해 최고의 힙합 앨범 중 하나이다.
2023년, <AftërLyfe>, 그리고 Drake와의 콜라보 트랙 "IDGAF"로 이트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각인시켰다.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은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자신을 음악으로 증명해 내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태도에서 이 작품은 시작되었다. <AftërLyfe>, <2 Alivë>에서의 다른 레이지 래퍼들과 다를 바 없던 이트는 어디 가고, 1년 내에 놀라울 정도의 발전과 성장을 이루어낸 그는 굉장히 균형 잡히고, 또 치밀하게 조율된 모습을 보여준다. 22곡이라는 긴 분량 동안 계속해서 분위기를 바꾸어가며 지루하거나 물리지 않도록 적절하게 완급 조절을 한다. 필자는 '레이지 앨범은 언제나 지루하다'라는 생각을 이 앨범으로 처음 깨게 되었다.
<2093>은 꽤나 큰 상징성을 지니게 될 작품이라고 조심스럽게나마 추측해 본다. Kanye West의 <808s & Heartbreak>나 Playboi Carti의 <Whole Lotta Red>처럼. 두 작품 각각 현대의 힙합과 레이지 장르의 시작을 알리고 이를 널리 전파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2093>도 그런 의미에서 큰 전위성과 상징성을 지니게 될 작품이라는 말이다. 현재 레이지를 한다는 아티스트나, 레이지를 듣는 리스너들 대부분이 레이지 앨범은 지루하다는 단점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기에 리스너들은 근 몇 년간 드릴 장르와 함께, 레이지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입 모아 말하곤 했다. 레이지의 아버지 격인 Playboi Carti의 기나긴 공백으로 인해, Destroy Lonely와 Ken Carson, 혹은 Ufo361이나 NIKOWOODYEAR를 비롯한 레이지의 축이 되거나, 혹은 레이지 장르를 기반으로 한 신예들이 어느새 장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레이지는 점점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2093>은 그런 현재의 레이지 장르의 터닝포인트가 될 앨범이다. 1시간 1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유기성과 퀄리티를 놓치지 않는, 또 지루함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이트의 퍼포먼스는 다른 레이지 아티스트들이 몸소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이 앨범으로 인해 힙합씬에 세대교체가 일어날 것이라는 말도 아니고, 당장 이 앨범으로 인해 레이지 장르가 힙합의 주축으로 재부상하진 않겠지만, <2093>과 이트는 언젠가, 혹은 조만간 일어날 세대교체에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단순 모쉬핏을 노린 것만이 아닌, <2093>에는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아이디어가 넘칠 정도로 담겨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의 이트의 행보, 그리고 레이지 음악의 미래가 너무나도 기대되게 만든 작품이었다. <2093>으로 이트는 앞으로의 힙합씬을 이끌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현 힙합씬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의 야심작 <2093>, 지루한 레이지 앨범에 지금 지쳐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