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집 구석 어딘가에 피어 있을 곰팡이를 집요하게 파고 드는 듯 하다
유화 그림같이 보이는 앨범 커버 속, 연두빛 산과 나무를 끼고 있는 3층정도의 건물, 그리고 그 앞에 지팡이를 짚고 두 발로 서 있는 동물같은 회색의 무언가. 전반적으로 에드바르드 뭉크의 그림이 생각나는 앨범 커버, 싱어 김라마와 래퍼 쿤디판다의 합작 앨범 <송정맨션>입니다.
1 싱어, 1 래퍼 앨범인 <송정맨션>은 처음 봤을 때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 모든 트랙이 앨범의 타이틀 곡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구성의 앨범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흔치 않은 형식입니다. 이는 이 후에 이 앨범을 감상할 때 상당한 영향을 주는 요소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추후에 앨범 총 감상을 이야기 할 때 다시 보도록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김라마와 쿤디판다는 목소리의 개성이 강합니다. 두 아티스트 다 한 두 소절만 들어보면 알아챌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목소리의 방향이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김라마는 무거운 연기처럼 가라앉아 지면을 감싸는 듯한 느낌의 목소리를, 쿤디판다는 레이저처럼 모든 벽면을 튕기는 듯한 목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배경에 깔리는 로우파이한 느낌의 비트에 김라마의 목소리는 악기 중 하나처럼 <송정맨션>의 비트에 녹아드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흘리는 듯한 발음의 노래는 그의 노래를 더욱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보컬 덕분에 노래의 분위기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고 부족한 부분이 충족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 위로 등장하는 쿤디판다의 래핑은 더욱 이목을 잡아 끕니다. 이러한 소리들을 뚫고 나오는 래핑은 정말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이러한 로우파이하고 액체같은 비트와 쿤디판다는 정말 잘 어울린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앨범을 들으며 쿤디판다가 정말 목소리와 추임새 활용을 잘 한다고 느꼈습니다. 랩이 나오기 전에 약간의 소리를 내던가, 아니면 분위기 전환에 맞춰서 목소리를 (자체적이든 기계를 활용하든)바꾼다던가 하는 변조를 통해 랩의 흡입력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둘의 목소리가 혼란스러운 비트 위에서 정말 조화롭게 섞여서 트랙 별 퀄리티가 하나하나 좋다고 느꼈습니다.
이 앨범을 다 듣고 나서 든 생각은 정말 어둡다는 것이 었습니다. 앨범의 각 트랙들이 모두 우리가 살면서 목격하는 한 가지 문제점들을 조명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첫 트랙인 '송정맨션'부터 9번째 트랙인 '모험'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노래하지만 모두 부끄럽고 나쁘게 생각되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트랙 순서대로 연인과의 권태, 층간소음, 성적이기만 한 관계, 음주, 스토킹, 원치 않은 임신, 가정의 경제적 문제, 가출 청소년, 자살까지 정말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9개의 트랙들을 모두 정리한 듯한 인스트루멘털 트랙인 '전승'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트랙들을 들어보면 전반적으로 로우파이하고,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소리들로 비트를 꾸렸습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을 접하는 청자는 거리감을 느끼고 괴이한 느낌마저 느낍니다. 소리의 뉘앙스로 청자가 거리를 두고 앨범을 감상하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각각의 트랙을 별개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뭔가 <송정맨션>이라는 제목과 첫 트랙처럼 저택이 아닌 여러 사람이 사는 맨션처럼, 이 맨션에 각 호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별개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어쩌면 이 곡의 모든 트랙이 타이틀인 이유도 트랙 속 이야기들이 각각 별개의 주인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각각의 집에는 그 집마다의 어두운 이야기가 있고, 각각의 집에 사는 사람 모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여겨지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마킹한 것 처럼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앨범에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다소 낮선 형태의 소리와 너무 추상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는 가사, 그리고 무엇 보다도 노래 소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도 상당히 존재합니다. 아무래도 상당히 어두운 부분을 노래로 만들었다 보니, 한번 깨닫게 되면 뇌리에 깊게 박혀 떨쳐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이런우려들을 제외하먼 상당히 훌륭한 앨범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0개의 트랙 중 정말 많이 들은 트랙은 총 2가지가 있는데, 우선 2번 트랙인 '복도'입니다. 여기에서 스토리텔링이 다른 트랙에 비해 매우 직관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조금만 집중해서 들으면 정말 한 사람의 생각을 풀어 쓴 듯한 쿤디판다의 래핑과 밖의 상황을 관조하는 듯한 김라마의 보컬이 어우러져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가사 또한 재치있게 하지만 (다른 트랙들에 비해) 쉽게 쓰여져서 재미를 빠르게 느꼈습니다.
또 하나의 트랙은 6번 트랙 '부동산'입니다. 오르간과 오르골같은 소리로 캐롤인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메인으로 하여 들리는 김라마의 노랫말은 너무 분위기와 상반되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김라마가 노랫말 한 마디로 전체적인 곡의 이야기를 좌지우지 하는 것도 상당히 흥미롭고 재밌게 들었습니다.
에드바르드 뭉크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앨범 커버아트처럼, 사람들의 각각의 부끄럽고 솔직한,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죽음이 함께하는 듯한 두려움과 허물들로 가득한 맨션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 맨션의 주인인 듯한, 어딘가 라마와 팬더를 합친 거 같은 지팡이 짚은 존재가 우리를 데려갈 준비를 마친 듯 합니다. 지금까지 김라마와 쿤디판다의 합작 앨범, <송정맨션>이었습니다.